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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란 무엇인가?
빨갱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용어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단어이며 특정 시대와 사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빨갱이의 기원과 변화 주요 사건에서의 활용 방식 그리고 현재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빨치산'에서 왔다는 설
공산주의 게릴라 유격대를 부르는 말인 파르티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며 역사적 기록 등을 통해 본 어원은 사실상 이것이 정설이다.
파르티잔은 러시아어 단어인데 한글 표기법상으로 파르티잔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러시아어 발음은 빠르찌잔에 가깝다.
빠르찌잔이라는 단어를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빨치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북한이 남한에 침투시킨 유격대원들을 빨치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빨치산이 해방 초기부터 6.25 전쟁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큰 문제를 일으켜서 반공주의 성향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들에게 큰 반감을 가졌는데 이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후에 빨갱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빨강'에서 왔다는 설
빨간색을 부르는 말인 빨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본래 근대 이전 유럽 사회에서 붉은 깃발은 "항복하지 않고 최후의 일인까지 결사항전하겠다"는 메시지를 적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러한 의미의 적기가 오늘날과 같이 좌익 사상의 상징이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의 일이다.
자코뱅이 집권한 1792년 이후에는 국기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으나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자코뱅이 몰락하고 나서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온건파들의 삼색기 사랑에 밀려서 찬밥 대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182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적기는 1848년 유럽에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다시 기세를 떨쳤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이 등장했으며 프랑스에서도 2월 혁명으로 7월 왕정을 타도한 뒤 새로 수립된 공화국의 국기를 더 이상 삼색기가 아닌 적기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커져나갔다.
하지만 알퐁스 드 라마르틴을 위시로 온건 부르주아들이 장악한 임시정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의 삼색기를 새로운 공화국의 국기로 채택했다.
이후 좌익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적기는 사회주의보다는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져 갔고 1871년 파리 코뮌은 역사상 최초로 적기를 국기로 채택했다.
19세기 말 아나키즘이 좌파 세력의 또다른 한 중심축으로 대두되면서 아나키즘도 적기를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곤 했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혁명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붉은색으로 정하고 혁명군을 '붉은 군대'라고 부르면서 1918년 이후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되어 버렸다.
조선이 해방되던 1945년에는 붉은색은 이미 공산주의로 인식되어 있었고 반공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빨강과 쟁이를 합쳐서 빨갱이(빨강+쟁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설은 반공 성향의 시민들이 공산주의자에게 쓰던 멸칭을 우파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좌파 정치가와 공산주의자를 부르는 멸칭으로 발전했다고 이야기한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점차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공산주의자나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의미했지만 이후 정치적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 확대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세력 중 사회주의를 따르는 집단이 등장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남북이 이념적으로 갈리면서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을 빨갱이라고 불렀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부정적인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제주 사건
제주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정부가 좌익 세력 색출을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까지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국가권력이 이념을 이용해 민간인을 탄압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국가보안법 제정과 남용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공산주의 활동을 막기 위한 법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민주화 이전까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이나 정치인들도 빨갱이로 몰려 처벌받았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낙인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은 신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정부는 시위대를 공산주의자나 북한의 사주를 받은 세력으로 규정하며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민주화 이후 빨갱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정치적 갈등이 심할 때 등장합니다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을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로는 표현의 자유 문제와 연결되어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정치적 도구로 악용된 사례도 많았으며 이를 통해 사회가 분열되기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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